Collision
(충 돌)
박 천
‌2021

나는 다소 폭력적이고 “ 거친 영화와 음악을 좋아하는 편이다. 평소 열심히 컨트롤하려는 이성과 의식을 무의식이 비웃으며 박살이라도 내려는 듯, 사적인 복수나 폭력, 법, 사회 불만에 대한 복잡한 심경들이 작업으로 드러난다. 현실에서의 내가 외면하고 회피하고 있는 수 많은 것들과 모호하고 불확실한 것들이 많기에 더 이러한 것에 끌리는 것인지 모르겠다.”
- 작가 안민, 작업노트 중에서

작가 안민의 작업노트에서 엿볼 수 있듯이, 오늘날은 명확한 ‘정의 justice, definition’가 소실된 사회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사회상은 많은 부분들이 뒤섞여 혼란한 형세를 띤다. 학문적인 측면에서의 ‘모던modern’이나 ‘포스트모던post modern’과 같은 것들은 철 지난 개념으로 받아들여진지 오래되었다. 하지만 사회적인 측면에서 바라봤을 때,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이 시점은 모던과 포스트모던의 양식들이 혼재되어 아직도 무수한 갈등을 비롯하고 있다. 국가는 교육, 법, 규칙 등과 같은 일련의 시스템으로 사람들의 일상을 일률적으로 재단하지만, 사회는 그 속에서 개인, 개성, 비주류 등의 가치를 인정하고 조명하여 그림자 없는 세상 구축을 시도 한다. 바로 이 지점을 통해 안민은 그동안 세계가 스스로를 구축했던 방식과 안민 본인이 경험했던 방식을 근거로 작업을 구성하며 질문을 던진다.

주체와 객체
기나긴 중세를 지나 근대로 시대가 이행되면서 인류는 이성적 사고, 다시 말해 이분법적으로 사고하기 시작했다. 주체와 객체(밝음과 어두움, 동양과 서양, 남성와 여성, 자본가와 노동자 등)를 나눠 이성적 사고방식을 체화하고, 그 안에서 좋음과 나쁨 혹은 옳고 그름을 상정하는 형식으로 세계를 이분화시켰다.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체계는 주체와 객체가 서로를 구분하여 적이 될 수밖에 없었고, 서구 열강의 식민지 경쟁, 1 · 2차 세계대전을 비롯하여 수많은 폭력을 낳는 결과로 귀결되었다. 이후 세계는 이성 중심적 사고, 이분법적 사고의 한계를 보았고, 이를 극복할 방향을 찾지만 이성적 사고의 틀을 벗어나기란 쉽지 않았다. 안민은 이 같은 거대담론적인 내용을 더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부분을 통해 조명한다. 본인의 생활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주체와 객체의 사소한 충돌(불법 주정차 차량을 마주하게 되는 보행자)에서 작업은 시작된다. 불법 주정차 차량으로 인하여 보행자가 인도를 벗어나 도로로 통행해야 하는 상황은 잠깐 사이에 벌어지는 짧은 상황이지만, 어쩌면 생존과 연결되는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다. 작품의 이미지에는 불법 주정차한 차량을 상징화한 대상을 그림 속에서 망가뜨린 행위가 드러난다. 안민은 이러한 사소한 충돌이 폭력으로 이어지는 근대성의 한계를 가상적으로 드러낸다.

실제와 가상
가상세계, 다시 말해 디지털로 이루어진 세계는 0과 1의 세계이다. 0과 1이라는 두 가지 요소(참과 거짓)를 통해 정보를 생산, 유통, 전달하여 디지털 세계를 구축한다. 이 세계의 구성은 실제의 세계와 같이 그다지 복잡하지 않고 명료하기 때문에, 복제를 함에 있어 원료나 노동이 들어가지 않고, 대상을 삭제함에 있어서도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깨끗하게 삭제가 가능하다. 하물며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도 있어, 시간이라는 개념에서도 자유롭다. 반면 실제 우리가 서있는 세계는 물질이 기본이 되는 세계이기에 어떤 대상의 복제에도 원료와 노동이 들어가고 제거를 함에 있어서도 흔적이 남으며 과거로 되돌아갈 수도 없다. 오늘날은 이러한 실제와 가상 세계가 공존하고 있으며 상호 간의 영향 또한 크게 미치고 있다.

안민은 이러한 시대의 모습을 이번 개인전에서 그대로 투영하려 한다. 전시는 캔버스에 그린 드로잉과 아이패드를 이용하여 그린 디지털 드로잉으로 구성된다. 먼저 ‘캔버스 드로잉’은 드로잉을 함에 있어 신체적인 요소와 물질적인 부분이 매우 크게 작용한다. 안민의 작업 방식은 ‘긋기’와 ‘닦기’로 진행되는데, 작품 사이즈에 비례하여 그 노동의 강도가 달라진다. 또한 물감이나 잉크를 사용하기 때문에 없었던 것과 같이 완벽히 지워낼 수 없다. 안민은 오히려 그 물질이 가지는 흔적을 ‘드로잉화’하여 표현한다. 때문에 시간과 신체활동의 레이어가 드로잉 속에서 드러나게 된다. 한편, ‘디지털 드로잉’은 패널 크기가 고정되어 있다. 하지만 디지털의 특성상 고민 없이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할 수 있고, 이 때문에 다양한 실험을 시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안겨준다. 이 가능성으로 인해 작업의 범위 및 한계가 확장될 수 있으며, 다양한 효과들을 통해 물질적으로 구현할 수 없었던 것을 가능하게 한다. 디지털은 이제 실제를 넘어 더 많은 가능성을 담지하고 있다. 안민은 이번 전시에서 각각의 매체를 통해 ‘캔버스 드로잉’이 가지는 특성과 ‘디지털 드로잉’이 가지는 특성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이러한 측면을 통해 안민은 실제와 가상을 이분법으로 구분하여 좋음과 나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 매체에 대한 가치를 객관적으로 드러내려 한다.

A와 B 사이에서
주지하듯이 우리는 주체와 객체가 충돌하는 세계에 서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가 위험하다는 것 또한 인지하고 있다. 서두에 얘기했듯이, 포스트모던을 비롯하여 여러 대안적 개념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패러다임을 전복시키는 것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해 보인다. 안민은 이와 같은 동시대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에 충실하려 한다. 실제와 가상의 결과물을 두고 각각의 형태를 충돌하지 않는 방식으로 드러내어 개체의 가치를 존중하는 반면, 그 속의 이미지는 충돌하여 해체되고 있는 모습을 띠고 있다. 안민의 이미지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이는 부분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의 모습을 띤다는 것이다. 이성적 방식으로는 포스트모던이 모던을 공격할 수 없었기에 선택한 것이 ‘해체’라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안민의 작업에서는 해체된 모습이 아니라 해체되는 과정, 어쩌면 온전하게 해체되는 것이 아닌 불완전하게 해체되는 과정의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안민이 작품으로 말하는 것은 사소한 충돌이든 거대담론의 충돌이든 간에 폭력성은 같은 선상에 놓여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를 질문 하고 있다.

박 천 (시안미술관 큐레이터)